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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나는 좀비처럼 살았어요.... 상처받은 영혼
작성일자 2013-01-16
좀비, 그러면 떠오르는 것은 무슨 바이러스에 걸려서 죽었다가 좀비로 변해서 산 사람을 쫓아다니며 산사람의 살과 피를 먹으며 사는 이상한 존재이다. 눈은 맹하고 정신은 없으며 굳은 몸으로 비틀거리며 걸어다니고 왠만큼 죽여서는 완전히 쓰러지지도 않고 계속 걸어다닌다.

주인공인 인간은 이런 좀비를 소탕하려고한다. 그 좀비도 원래는 인간이었는데 바이러스에 걸리거나 좀비에게 물려서 좀비가 되었는데 말이다. 사람을 해칠 수 있다는 이유이다.
어쩌면 우리는 우리 마음 깊이 숨어있는 좀비를 무서워하면서 저 멀리 밀어놓고 의식에서 없애려고만 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좀비는 인간이었다가 좀비에 물려서 좀비가 된다. 마치 그렘린이 약속을 지키지 않은 그렘린에 의해 무섭고 악랄한 그렘린이 되듯이 말이다. 어쩌면 상처가 영혼을 병들게 하는지도 모른다. 상처가 유전되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모범생이지만 심각하게 방황하는 젊은이의 정신분석 이야기다.
S는 꾸준히 분석치료를 해오고 있었다. 어느 날 그가 말하기를 '나는 여태 좀비처럼 살았어요..." 라고 하였다.

그의 어머니는 지극히 자기애적이며 아이를 자신의 부속물인 것처럼 구속하고 통제하며 키웠다. 과보호와 비난을 동시에 하였다. 또한 군대식으로 '반드시 해야한다, 못할게 뭐냐, 못하는 것은 바보다' 하면서 키웠다. 아이가 조금이라도 못하거나 실수를 하면 야단을 쳤다. 실수를 꼴보기 싫어했다. 어떤 때는 심하게 야단을 치거나 바보라고 욕하는 것도 서슴치 않았다. 자존감의 상처를 심하게 받곤하였다.

아이는 자신감을 점점 잃고 위축되고 불안해하며 성장하였다. 그러다가 사춘기가 되자 판단력이 생기고 힘이 생기면서 반항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어머니는 아이를 독립할 수 있도록 놓아주질 않았다. 구속과 간섭, 통제와 비난은 지속되었다. 아이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방황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소용이 없었다. 이후 하는 일이 다 되지를 않았다. 실수도 많았고 최선을 다할 수도 없었다. 어려운 일이 닥치면 쉽게 포기하곤 하였다. 아이와 엄마의 싸움은 계속 지속되었다.

분석치료를 하는 과정에서 그의 분노가 정말 심각하며 커다랗다는 것을 인식하기 시작하였고, 분노를 이해하면서 조금씩 조절이 될 수 있게 되었다. 아울러 이런 성장과정에서의 트라우마들이 자신에게 심리적 영향을 주었다는 것을 인식하면서 자신이 좀비처럼 살았구나 하는 병식이 생겼다. 비참하고, 무시당하고 사랑과 인정에 허기지고 상처받고 버림받고 무시당하고 평가절하 당하고 비참하고 무능력하게 느껴졌던 무력한 자기가 의식되기 시작하였다. 치료 과정에서 그동안 억압되었던 열등감 가득한 자기가 의식화된 것이다. 이렇게 의삭화됨으로써 자신을 이해하게 되었고 내적으로 엄마와의 관계도 점차 이해하기 시작하였다.
마침내 그는 엄청난 분노와 많은 두려움을 극복하고 자유를 얻고 스스로의 삶을 살기 시작하였다.
이렇게 좀비 영화에서 보듯이 상처 받은 자기가 의식 저편으로 멀리 추방당하고 의식은 안해서 편할지 모르지만 속에서는 결국 무의식의 주인인 인간에게는 해를 가하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실 우리가 문제를 어느 정도는 인식하고 잇어도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 이유가 바로 이런 경우처럼 트라우마를 받았던 상처와 감정, 자기표상, 내적대상관계 등이 저기 무의식으로 쫒겨나가 억압이 되기 때문이다. 기억해봐야 괴롭기만 하기 때문에 억압해버린 것이다. 분석을 통해 이런 억압이 풀리면서 그동안 이해할 수 없었던 고통들이 이해가 되고 비로소 자신을 묶고 있던 쇠사슬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분석은 값지며 분석으로 치유되어 고통에서 벗어나는 과정은 아름답기까지 하다.